Orchaard
최 봉림 (사진평론가)
이경수는 4 x 5인치 컬러리버설필름 color reversal film을 넣은 핀홀카메라 pinhole camera 로 여러 해 동안 '아버지의 과수원'과 '과수원의 아버지'를 강박 관념적으로 응시했다. 그리고 작가는 핀홀카메라로 찍은 과수원의 꽃과 열매들, 그 풍경 속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시든 육체의 잠상 latent image들을 컬러네거티브필름 방식으로 현상 development했다. 다시 말해 현실과 동일한 음양과 색상으로 재현되는 컬러리버설필름 현상방식을 택하지 않고, 색상과 음양의 배치가 현실과 반대로 나타나는 네거티브이미지로 현상한 다음 프린트했다. 그 결과 이미지의 명암의 대비 폭이 커졌고, 색상의 채도는 비현실적으로 강화되었다. 푸른 하늘은 코발트색으로 빛났고, 민들레는 치자열매보다 더 노랗게 물들었다. 아버지 얼굴의 주름과 그의 몸에 새겨진 노동의 상흔은 사과처럼 검붉은 빛을 띠었고, 새봄의 도래를 알리는 배꽃은 흰빛으로 작렬했다. 작가의 핀홀카메라와 더불어 현실의 색상과 명암은 그 미묘한 연속성을 잃어버렸다. 각각의 색조는 그 곁에 있는 다른 색과 격렬하게 대립했고, 밝은 빛은 어두운 그림자를 불러들였다.
'아버지의 과수원'과 '과수원의 아버지'는 아주 작고 작은 바늘구멍을 통해 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화면의 중심부는 밝지만 주변부는 어두웠다. 작가의 핀홀카메라는, 사진용어를 빌면, 4 x 5인치 필름을 포괄할 만큼 이미지 서클이 충분히 크지 않기 때문에, 네 끝 가장자리에 비네팅 vignetting이 생겼다. 그리고 너무나 적은 빛을 받아들이는 그의 핀홀카메라는 맑은 날의 경우에도 약 10초의 노출시간을 요구했다. 아주 예외적이지만 흐린 날 촬영을 시도할 경우 약 40초 이상의 긴 노출시간이 소용되었다. 따라서 핀홀카메라의 이미지 속에서 움직이는 모든 사물은 최소한 10초 동안 꼼짝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그 움직임 때문에 흐릿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꽃조차 그 움직임의 흔적을 드러냈으며, 팔순이 지난 아버지의 느린 동작도 그 움직임의 자취를 흐릿하게 보여줬다. 선명한 이미지를 위해서는 과수원의 아버지는 부동의 자세를 유지해야만 했다. 자연스럽게, 그가 늘 그랬듯이, 그가 일군 과수원을 움직이지 않고 응시하여야 했다. 노동과 세월에 지친 몸을 의식하고, 잃어버린 육체의 기운을 절감하여야 했다.
그렇다면 컬러리버설필름으로 촬영한 '과수원의 아버지'를 네거티브필름의 방식으로 현상하는 작가의 선택은 무엇을 지시하는가? 작가는 무엇 때문에 현실의 색상과 명암의 계조도가 그 연속성을 상실하고, 이미지의 주변부가 어렴풋이 어둠에 잠기는 핀홀카메라로 아버지와 과수원을 응시했는가? 왜 그는 '아버지의 과수원'을 필름면에서 정확한 초점을 형성하지 못하고, 장시간의 노출이 필연적인 핀홀카메라를 고집했는가? 작가의 말에서 그 단서를 찾아보기로 하자.
'나의 어린 시절은 과수원의 흙냄새와 함께 한 삶이었다. 어린 시절 먹거리의 낭만과 아름다운 꽃들의 기억도 있지만, 가시덩굴이 무성한 탱자나무, 날카로운 철조망으로 굳게 닫혀있는 울타리는가 안겨준 미묘한 감정도 있다. 어느 덧 고목으로 변해버린 과수원의 수목들은 늙으신 아버지의 초췌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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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한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의 모습을 과수원의 수목들의 생태에 견주어 표현하였다. 땅을 평생 지켜온 아버지의 몸, 손과 발이 과수목의 원줄기와 가지라는 관점에서 동일한 시각으로 보았다. 이는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속에서 퇴색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과수원의 풍경이 하나로 비춰지고 있다. 과수 한 그루 한 그루 그 자체가 아버지의 수족과 흡사하고, 수목들의 삶은 아버지의 삶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사진작가에게 있어서 과수원은 아버지의 은유 metaphor이며 환유 metonymy이다. 과수원은 그 형태나 속성에 있어서 아버지의 삶과 유사성, 닮음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은유이며, 과수원은 아버지의 육체와 물리적 인접관계 속에서 서로 접촉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의 환유이다. 아버지와 과수원은 은유와 환유라는 이중의 비유관계로 불가분 맺어져 있기 때문에 '과수 한 그루 한 그루 그 자체가 아버지의 수족과 흡사하고, 수목들의 삶은 아버지의 삶과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며, 작가의 '마음속에서는 퇴색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과수원의 풍경이 하나로 비춰지고 있다.'
과수원과 아버지가 은유와 환유의 관계를 맺으며 '하나로 비춰지는' 이러한 상황은 일종의 환각상태이다. 아버지의 손과 발, 눈길이 닿은 과수원의 모든 사물들에서 그의 형상, 그의 삶을 보는 것은 팔순을 넘긴 노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의 정이 빚어낸 일종의 혼돈상태이다. 작가는 아버지가 접촉한 과수원의 모든 것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착란의 시선을 가진 셈이다. 이러한 환각의 시선은 현실의 색상과 명암의 계조도를 현실처럼 재현하지 못한다. 과수원의 민들레와 배꽃은 착란의 색채로 물들며, 아버지의 주름과 시름은 검붉게 얼룩진다. 긴 세월의 그림자는 어둠처럼 그의 몸을 감싸고, 나무 가지는 그의 몸처럼 거칠기만 하다. 이 착시의 색채와 형상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컬러리버설필름에 네거티브필름 현상방식을 적용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하늘은 그의 사라진 희망처럼 코발트빛으로 빛나고, 마지막까지 매달린 사과는 그의 시름처럼 붉게 타올라야 했다.
연민과 죄스러움의 감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혼돈의 시선은 일반 카메라의 시선처럼 명확할 수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아버지의 대체물인 동시에 작가의 어린 시절을 간직한 과수원은 일반 카메라의 재현처럼 선명할 수 없는 법이다. 유년시절의 추억은 거의 언제나 흐릿하며, 기억의 주변부에는 회한과 그리움의 감정이 어둡게 드리우기 때문이다. 핀홀카메라의 흐린 기억의 영상만이 작가의 지난 시간과 노부의 흘러간 세월을 암시할 수 있다. 핀홀카메라가 아니면 유년시절도, 과일나무에 중첩된 아버지의 이미지도, 그의 몸이 간직하고 있는 과수원의 이미지도 떠올릴 수 없다. 핀홀카메라와 더불어 5cm까지 다가가 '가시덩굴이 무성한 탱자나무, 날카로운 철조망으로 굳게 닫혀있는 울타리'를 응시할 때만이 그의 유년시절은 되돌아왔다. 더는 다가갈 수 없는 거리까지 다가가 핀홀카메라와 함께 과일나무가 된 아버지의 육체와 아버지의 육신처럼 보이는 과일나무를 10여초 동안 바라볼 때만이 작가는 늙은 농부의 아들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이경수에게 있어서 핀홀카메라는 단순한 재현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과수원의 풍경을 통해 작가의 유년시절을 되찾는 도구이며, 시든 아버지의 육체를 통해 그의 존재의 기원을 탐구하는 도구이다. 과수원의 초목과 아버지의 육체에 무한히 다가갈 수 있고, 그 대상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바라보게 만드는 핀홀카메라만이 '과수원의 아버지', '아버지의 과수원'을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에 부합했던 것이다. 일반 렌즈의 최단 초점거리인 20-30cm로는 작가의 몸이 비롯된 존재의 근원에 도달할 수 없었고, 일반사진기의 60분의 1초, 125분의 1초의 응시시간으로는 어린 시절의 '미묘한 감정'을 다시 맛볼 수 없었다. 사진기의 기원인 핀홀카메라만이 그의 존재의 뿌리와 오랜 기억을 재현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렌즈도, 뷰 스크린도, 셔터장치도 없는 기원의 사진기만이 작가의 추억과 부성애, 그리고 그가 알지 못하는 정신의 상처를 일깨울 수 있는 도구였다.
사실 이경수의 사진은 사라진 유년시절과 시들어 가는 아버지의 육체를 오랫동안 보듬으려는 시도이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사진이라는 기억의 장치로 영원히 붙들려는 기도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불가능한 시도 앞에서 아쉬움과 슬픔의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핀홀카메라와 더불어 그는 영원히 순환하는 계절 속에서 시들어 가는 노부의 삶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그는 만개한 배꽃과 붉은 사과가 안겨주는 격렬한 회상과 회한의 감정을 억누르며, 삶에 지친 육체를 말없이 받아들이는 노부를 말없이 수긍할 뿐이다.
2002년 6월 프랑스의 남부도시, 몽펠리에 Montpellier에서는 한국의 사진작가 15명의 초대전이 있었다. 당시 프랑스의 유력지「르 피가로 Le Figaro」는 뒷짐을 지고 배꽃이 만개한 파란 하늘의 과수원을 바라보는 노부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다음과 같은 해설을 달았다. '이경수의 전시된 사진은 언뜻 보기에는 대단히 평온해 보이지만, 천천히 살펴보면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알 수 없는 고통을 솟구치게 만든다. (...) 흙을 움켜쥐는 노부의 손에는 어쩔 수 없이 사라지는 모든 것 앞에서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격렬한 고통의 상처가 새겨져 있다.' 이경수의 사진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알 수 없는 고통', 그리고 우리가 그의 사진에서 경험하는 '격렬한 고통의 상처'는 '아버지의 과수원'과 '과수원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사랑을 아무런 말없이 홀로 되새기는 작가의 시선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아들의 침묵과 응시를 침묵으로 쓸쓸하게 받아주는 노부의 헤아릴 길 없는 사념에서 비롯된다. 바로 아버지와 아들의 이 말없는 연민이 과수원 전체를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격렬한 고통의 상처'에 휩싸이게 만든다. 이 두텁고 둔탁한 침묵이 삶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알 수 없는 고통'으로 전율케 한다. 과수원 울타리의 탱자나무 가시와 날카로운 철조망처럼 우리의 삶에 대한 의식을 아프게 찌르고 만다.
In father's orchard
Choi, Bong-Lim Photographic Critic
Kyungsoo Lee has been obsessively viewed 'Father's orchard' and 'Father in the orchard' for many years with a pinhole camera that's equipped with 4x5 inch color reversal film. And the author developed the images of flowers and fruits in the orchard, his father in the scenery, and the latent image of his father's withered body with color negative film method. He didn't choose the color reversal film developing method, which would express the real colors and light and shade, but instead he chose to develop to negative images and print, which would express the images to the opposite of the reality in colors and light and shade. As the result, the contrast between the light and shade gets more obvious and the depth of colors is unrealistically emphasized. The blue sky shines in cobalt, and the dandelions are stained in more vivid yellow than gardenia fruit. The wrinkles in father's face and scars in his body from the hard labor are deeply carved in blackish red. And the symbol of spring, pear blossoms are exploding with their whiteness. The reality in colors and light and shade lost its delicate continuity with the author's pinhole camera. Each color is sharply divided with the one next to it, and the bright light brings up the dark shades.
In 'Father's orchard' and 'Father in the orchard', the light comes through a tiny pinhole, which brings the brightness at the center of the picture and the darkness all around. The author's pinhole camera, to borrow photographic terminology, doesn't have the image circle big enough to contain 4x5 inch film, and causes the vignetting at the four corners. And because his pinhole camera takes so little light, it requires about 10 second exposure time even in bright days. Very rarely, when trying to take photographs in cloudy days, it requires about 40 second long exposure time. Therefore the subjects in the pictures taken with the pinhole camera are little bit fuzzy except when they don't move at all for at least 10 seconds. Even a small wild flower, stirring in the wind, leaves its trace of movement in the picture, and even a slow movement of the author's old father, in his 80s, leaves the trace in the picture. To capture the vivid image, 'Father in the orchard' had to keep his posture without moving a hair. Naturally, as always, he had to stare at the orchard he worked on without moving. He had to acknowledge his tired body over the hard labor and time and tide, and reduce his losing body strength.
Then what does the author's choice to develop 'Father in the orchard' he filmed with color reversal film to negative film method indicate? Why did the author view his father and the orchard with this pinhole camera, which loses the continuity of the colors and light and shade in reality, and sinks the surroundings of the image in the dark? Why does he so stubbornly insist on filming the 'Father's orchard' with the pinhole camera, which cannot form the accurate focus, and requires long time exposure? Let's refer to the author's quotation to find the meaning.
'Growing up in an orchard, I can't think back of my childhood without thinking the smell of earth. Thinking back, I remember not only the romantic sentiment about the childhood snacks and beautiful flowers, but also the delicate and complicated feelings of hardy-orange trees that are covered all over with the thorn vines, and the firmly closed fences with sharp barbed-wire entanglements. I see my father's haggard face in the old fruit trees that have been growing old so quickly over the time.
(......)
I wanted to express my father's life, who has worked his whole life with the earth, compared with the lives of fruit trees in the orchard. I view father's body, arms and legs as trunks and branches of the fruit trees. For some time now, I've been seeing my withering father and scenery of the orchard as one and the same in my heart. Each and every tree in the orchard is like my father's arms and legs, and the lives of the trees are like my father's life.'
The orchard to the author is metaphor and metonymy for his father. The orchard, for its form or attribute, resembles the father's life and relates to the similarity, hence the metaphor. And the orchard is a space where it physically contacts with the father in contiguity, hence the metonymy. The father and the orchard are inseparably related to each other in double figurative relationship. And the relationship is so tight, the author feels that 'Each and every tree in the orchard is like my father's arms and legs, and the lives of the trees are like my father's life. 'and' I've been seeing my withering father and scenery of the orchard as one and the same in my heart.'
The father and the orchard are related to each other both metaphorically and metonymically, and seeing them 'as one and the same' is a kind of hallucination. Seeing father's arms and legs, the father and his life in everything in the orchard the author lays his eyes on, is a kind of confusion caused by deep affection and compassion the author feels for his old father in his 80s. It seems like the author has the mistaken vision of his father in everything in the orchard the father touches. In this hallucinating vision of his, the author cannot express the gradation of color and light and shade realistically.
Dandelions and pear blossoms in the orchard are dyed in illusional colors, and father's forehead is stained in blackish red with the wrinkles and worries. The shadow of time and tide winds up his body like the darkness, and the branches are rough like his body.
To reproduce these illusional colors and images, the color reversal film and negative film developing method should be used. And the sky should shine in cobalt like his disappearing hope, and the last apple still hanged in the tree should burst into flame like his worries.
The confused vision of the author toward his father with compassion and the guilt can't be as clear as usual cameras. Furthermore, with the orchard, which is the substitute for his father and his childhood at the same time, he can't have clear view and the objectivity. Because the memories of childhoods are always fuzzy and dark shadows of remorse and yearning are hung down around the memories. The cloudy image of the author's memory taken with the pinhole camera is the only thing that suggests the passed time for him and his old father. Without the pinhole camera, he won't be able to flash his childhood, the image of his father overlapped with fruit trees, and the image of the orchard he keeps in himself. His childhood only comes back when he approaches to the 'hardy-orange trees that are covered all over with the thorn vines, and the firmly closed fences with sharp barbed-wire entanglements' in 5cm distance with the pinhole camera. He can only be the old farmer's son again during the 10 seconds he's holding the pinhole camera as close as possible to the father's body, which became a fruit tree, and the fruit tree, which seems like his father's body and looking at it.
So the pinhole camera to Kyungsoo Lee is not just a reproducing tool. It's a tool that brings him his childhood through the scene of the orchard, and pursuits his origin of existence through his father's withered body. The pinhole camera, which requires the author to step indefinitely close to the trees and father's body in the orchard, and to look at the subject for long time, is the only tool that can correspond to the son's view of 'Father in the orchard', and 'Father's orchard'. The shortest focal distance being 20-30cm with the usual cameras, the author can't reach close to the origin of his existence, and 1/60 or 1/125 second of exposing time of the usual cameras doesn't bring him the 'delicate feelings' of his childhood. The pinhole camera, the origin of cameras, is the only tool that can reproduce the root of his existence and the old memories. The original camera, with no lens, no view screen, and no shutter device, is the only thing that can bring him the memory and his father's love, and waken the mental scars he's not even aware of.
Photographs of Kyungsoo Lee are really his effort to embrace his disappearing childhood and his father's withered body for little bit longer. It's a pray to grasp constantly flowing time with a photograph, a memory device, forever. But the author never expresses his unsatisfied and sad feelings in front of this impossible effort. With his pinhole camera, the author just silently looks at his old father's life in constantly rotating seasons. He suppresses his emotions of strong recollection and remorse that full bloom of pear blossoms and red apples bring, and takes in the father who's accepting the tired body in silence.
In June of 2002 in Montpellier, a southern city of France, was a preview of 15 Korean photographers. In (Le Figaro(, an influential newspaper in France at the time, the photo of an old man with his hands behind his back, gazing at the blue sky and the orchard, was printed with a commentary as follows. 'The photo of Kyungsoo Lee seems to be very serene at first sight, but if you watch it closely, it gets you into uncontrollable confusion and brings you unfounded pain. (...) The old mans hand grasping earth is carved with scars of intense pain that every human being experiences when faced with inevitable disappearance of things.' The photographs of Kyungsoo Lee bring us the 'uncontrollable confusion and unfounded pain', and the scars of intense pain' we experience from his photos is caused by the author's view of meditating the memory and love for the 'Father's orchard' and 'Father in the orchard' by himself in silence.
And it's also caused by the innumerable thoughts of old father who's lonesomely taking in the silence and the gaze of the son in silence. The very silent compassion of the father and the son makes the entire orchard get wrapped up with 'uncontrollable confusion and unfounded pain'. This deep and dull silence makes our cognizance about life shudder with 'unfounded pain'. Like the thorns of hardy-orange trees in the fences of orchard, and the sharp barbed-wire entanglements, it thrusts our consciousness about life painfully.
A bathing Beach
평론 | 민병직
해수욕장-카메라의 작은 구멍을 통해 천천히 그 꿈을 들여다 보다. ● 흔해 보이는 듯 하면서도 조금이라도 시선을 기울이게 되면 뭔가 어색하고, 특이한 저 바닷가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작열하는 여름 한 낮의 바닷가 풍경이야 익숙할 만큼 익숙한 터이라 색다른 느낌의 바닷가 풍경이 싫지도 좋지도 않았지만, 굳이 핀홀 카메라로 힘들게 이런 풍경들을 담아낸 이유가 못내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핀홀 카메라의 저 독특한 이미지들이 새삼 신기하기만 했다. 작가의 사진들을 보며 처음에 든 생각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었다. ● 우리에게는 여느 평범한 바닷가의 풍경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작가에게는 이런 저런 추억이 서려있는 바닷가, 정확히는 대천의 한 해수욕장에서 2004년도에 찍은 이미지들이라고 한다. 고 1때 처음 보았던 바닷가의 이미지가 작가에게 어떤 것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잡다하고 왁자지껄한 느낌을 던져주는 여름 한 철의 해수욕장의 이미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고향에서 가까운 거리였지만 자주 가보지 못했던, 그래서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처음 가보게 되었던 색다른 공간이었고, 그런 이유로 작가 개인에게는 일상의 일탈의 기회이자 무한한 동경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만큼이나 그 첫 느낌은 강렬한 느낌과 함께 원초적인 어떤 인상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던 공간이었던 것 같다. 그 느낌에 대한 향수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지속되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다시 찾은 해수욕장의 시끌벅적한 풍경은 작가가 꿈꾸었던 그런 바닷가의 풍경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런 이유로 조금은 다름 방식으로 이미지들의 풍경들을 담아내고자 한 것이 이번 사진전의 배경이라면 배경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은 우리에게 어떤 스토리를 이야기해주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전하지 못하는데 아무래도 이 모든 풍경을 담아내는'그 조금은 다른 방식에 관한 것'들이 더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듯싶다. 핀홀 카메라로 이들 풍경들을 담아내려 했던 그 이유 말이다.
이번 사진전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여름 한철 해수욕장의 왁자지껄하고 시끌벅적한, 그래서 일상적인 느낌으로 와 닿아 있는 생생하기만 한 피서지의 바닷가 풍경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간혹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물들의 움직임들이 긴 노출 때문에 흐릿하게 붙잡혀 있기도 하지만 원근감이 분명하고, 특히 화면의 원경에서 보일 것만 같은 많은 사람들의 움직임들이 정돈되어 있어 번잡하지 않은 느낌을 준다. 더구나 화면의 중심부는 선명하고 가장자리는 군데군데 보이는 비네팅(vignetting) 효과로 인해 풍경을 둘러싼 외곽들이 전체적으로 어둡거나 짙푸른 색감을 보여준다. 특히 컬러리버설 필름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현상한 덕택에 유난히 짙푸른 여름 하늘의 색감이 인상적이다. 이런 요소들로 인해 전체적으로 낯설고 특이한 이미지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척이나 몽환적인 느낌마저 던져준다. 때로는 정지된 사물들의 건조한 풍경들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움직임에 민감한 핀홀 카메라의 특성으로 인해 사람들의 흐릿한 움직임과 대조되는 해수욕장의 풍경들, 이를테면 비치파라솔이나 모래사장에 널 부러져 있는 물놀이 용품들 같은 정적인 사물들이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느린 카메라 속으로 들어온 이들 정돈된 풍경들이 때로는 몽환적인 느낌들을 만들어 내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름 해변의 번잡한 풍경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시키고 있는 것이겠고, 작가에게는 자신이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는 바다의 그 넓고 휴식 같은 느낌의 이미지들을 만들어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어떤 이미지들이든 간에 이들 풍경들은 여름 해변이 주는 일상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있다는 면에서 모호한 이미지들이라 할 수 있다. 작가가 핀홀 카메라의 작은 구멍을 통해 보려했던 것들도 아마도 이런 애매한 이미지, 현실의 정확한 이미지나 그 풍경이라기보다는 이제는 잃어버린 바다에 대한 어떤 기억이거나, 혹은 그것들에 대한 어떤 욕망이기도 한 그런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면에서 이번 사진전 역시 작가의 이전 작업인 아버지와 과수원을 핀홀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아버지라는 특별하기만 한 피사체를 다루었던 전작의 느낌이 더욱 강렬하고 집약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작업의 지평이 더욱 확대되었고 작가의 작업 세계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이번 사진전 역시 분명 주목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정확한 의미에서 핀홀 카메라로 피사체를 정확히 찍어내기에는 여러 가지 기계적인 무리수가 따른다. 렌즈가 없는 기계적인 특성으로 인해 핀홀 카메라는 뷰파인더 없이 대상과 관계해야 하고, 순간의 어떤 정황을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핀홀 카메라는 작가의 말처럼 피사체와의 어떤 교감을 더 가능하게 하는 매체라고 볼 수 있다. 남다른 기억으로 자리했던 아버지의 모습이나 그 기억이 서려 있는 과수원의 이미지도 그렇고 원초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을 만큼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바다의 이미지는 그렇기에 작가에게 있어 단순히 카메라로 포착하고 담아내야 하는 대상 이상이었을 것이고 작가는 이를 위해 핀홀 카메라를 매개로 하여 대상과의 긴 교감을 하려 했던 것 같다. 물론 이러한 교감의 결과가 작가가 원했던, 혹은 그렇게 작가가 보았고, 예측했던 것들과는 거리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들 이미지는 대상에 대한 작가의 어떤 해석이나 사유를 담고 있다기보다는 그 태도나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직접적인 현실의 재현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에게 핀홀 카메라는 대상에 대한 작가의 어떤 지향이나 욕망을 드러내는데 더 근접한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말들이 좀 애매할 수는 있겠다. 왜냐면 핀홀 카메라 역시 대상을 어떤 형태로든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핀홀 카메라가 우연하게 대상을 담아내는 방식은 작가의 사유 속에서, 코드화 된 이미지로 현실을 재단하는 것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이번 사진전에서 보게 되는 그 애매하기만 한 바닷가의 풍경 역시 작가가 특정한 시점에서 보았던 해수욕장의 풍경과 거리가 있는 것들일 뿐만 아니라 오래된 기억으로 남아있던 최초의 바닷가의 이미지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작가가 우연한 방식이긴 하지만, 다른 식으로 담아내려 했던 모호한 이미지들에 가까운 것이고, 작가의 특정한 시선에 의해 포착한 이미지가 아니라 느린 방식으로나마 길게 교감하려 했던 이미지에 근접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을 하자면 작가의 시선에 의해 포착된 것들이 아니라 빛이, 핀 홀로 들어와 우연히 만들어낸 이미지들인 것이다. 작가는 이런 '눈먼 기계'를 들고 그저 그 기계가 매개하는 것들과 색다른 방식으로 관계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가가 그렇게 카메라를 단순히 들고 작동시켰다고만 말할 수도 없는데, 왜냐면 이 카메라가 매개시키는 대상들이 작가의 어떤 오래된 기억의 편린들과 어떤 형태로든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작가는 어떤 식으로든 이런 기억들을 의식적으로 그려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결과는 작가의 예상과 어느 정도는 비슷할 수는 있겠지만 분명 같지 않은 것들이고, 직접적인 현실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들하고도 다른 것들이다. 대상을 담아내고 포착한다는 말 대신에 대상과 어떤 관계를 맺으려 함이라든가 대상에 대한 작가의 어떤 욕망을 근접하려 함이라든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느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현실의 어떤 순간을 응고시키는 것이겠고,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어떤 면에서는 작가의 사유나 시선에 의해 재단되고 조각난 세상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사진기를 통해 현실의 어떤 단면을, 그 순간을 바라보고 조작하고 기록 해왔다. 이런 방식들이 요즘 우리가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익숙한 모습일 것이다. 이번 사진전은 이와는 좀 다른 느낌인데 아무래도 눈먼 기계라는 사진의 오래된 속성을 핀홀 카메라가 유감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인 듯싶다. 눈멀었기 때문에 대상을 향한, 명민하고 예리한 시각이라기보다는 사진이라는 기계적인 방식을 통해 대상과 어떤 특정한 관계를 맺게 되거나(교감하거나) 혹은 이를 통해 대상에 의한 자기 자신을 다시 보게 되는 그런 방식 말이다. 그의 핀홀 카메라는 이렇듯 어떤 시각의 장 속에 사로잡혀 있는 작가(의 현존, 혹은 그 상태)를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과정은 작가의 어떤 정체성을 드러낸다기보다는 대상과의 특정한 관계에 있는 작가의 현존의 상태를 드러내는데, 그 상태가 대상에 대한 작가의 욕망인 이유는 언제나 완전히 충족되지 못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 욕망의 관계는 차라리 어떤 의미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대상과의 특정한 관계맺음 속에서 계속해서 지연되는 흔적이나 얼룩들에 가까운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이 이른바 지표로서의 사진적 이미지에 대한 것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대목들이다. 이번 사진전에서 볼 수 있는 것들도 그런 것들이다. 다시 말해 작가가 포착하고 담고 싶어 했던 바다의 어떤 이미지가 아니라, 작가의 기억이나 욕망 속에서 담고 싶어 했던, 그러나 정확히 담아낼 수 없었던 그런 해수욕장의 이미지였고 이를 위해 작가는 핀홀 카메라를 들고 여름 바닷가로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 이미지들을 보면서 작가가 원했음직한 바다의 어떤 이미지를 다만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바다나 해수욕장이라는 어떤 특정한 시점의 공간에 대한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바다에 대한 작가의 어떤 기억이나 욕망에 가까운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미지가 정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현실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몽환적인 것은 우선은 핀홀 카메라나 독특한 인화 방식이라는 매체 자체의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겠지만 작가가 이들 매체의 속성이나 결과를 어느 정도 감수하면서까지 드러내려 했던 이런 특별했던 이유들이 한 몫 했던 것 같다. 이런 이유들이 얼마간은 의도적이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의도를 직접적으로 실현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바다에 대한 작가 자신의 그 내밀한 기억이나 욕망이 정확히 담겨있다고 볼 수도 없다. 왜냐면 이런 방식은 현실을 정확히 재현하는 것과 거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단지 대상에 대한 특정한 관계나 태도만을 비껴가듯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것들의 편린들을 얼룩처럼 부분부분 묻혀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작가가 담아내길 원했던 바다의 이미지는 계속해서 지연이 되었던 것이고 다른 방식으로 지속되었던 것이다. 물론 우연하게 담겨지기도 하겠지만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라는 단서를 다는 한에서만 그렇고, 이런 면에서 이들 이미지는 언제나 부정확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모호하면서 애매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이 몽환적인 이미지들이어서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은 이런 메커니즘에 비하면 차라리 부수적인 느낌이었다는 생각이다.
'카메라의 작은 구멍을 통해 천천히 그 꿈을 들여다본다.'유난히 곱씹어보게 되는 작가의 말이다. 여기서 잠시 그가 뷰파인더도, 셔터장치도, 렌즈도 없는 핀홀 카메라를 들고 한 여름 작열하는 해변의 풍경을 담기 위해 바닷가로 갔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부산한 피서객들의 요란스러운 움직임들은 그저 잡힐 듯 스쳐갈 뿐인 핀홀 카메라를 든 작가에게 여름 한철의 해수욕장이 그리는 왁자지껄한 이미지들은 사실 처음부터 쉽게 담아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느린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보길 원했던, 한바탕 요란한 꿈과도 같은 그 바다의 풍경은 그 시점에서 주어진 현실의 바다풍경이 아니라 작가가 마음속으로 그리고자 했던, 작가 자신의 바다에 대한 어떤 꿈에 더 가까운 것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현실에서는 그 어떤 것도 아닌, 심지어 작가의 마음속에서 그리고자 했던 그 어떤 바다의 풍경과도 닮아있지 않은, 그러나 단지 작가가 드러내고자 했던 바다라는 내면의 기억에 조금 더 가깝게 근접해 있을 뿐인 그런 꿈들, 이미지들 말이다. ■ 민병직
食口식구
마음의 정원 Mindful Garden 중에서 일부 발췌한 글
이경수는 관점을 달리하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일상의 소박한 즐거움을 보여줍니다. 음식을 섭취하는 일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하찮은 일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자주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매일 짓는 밥이 늘 같을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면 달이 차고 해가 갑니다.
작고 사소한 것을 크고 강하게 만들어주는 사진의 힘은 대형카메라의 세밀한 시각을 통해서 자주 확인됩니다.
마음의 정원 기획전시회 ‘식구’ 작품
Lee, Kyung Soo shows simple joy of everyday life that can easily be found with just a change of views. Taking in food may seem like petty act repeated daily, but at the same time it is a very important event that often brings us joy. Food we make can't be the same all the time, and days go by as moon and sun do too. The power of photograph that makes small and trivial things into big and strong ones can frequently be proved through elaborate vision of large format cameras.
글 사진심리학자 신수진 writer. photograph-psychologist. Shin, Suejin